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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15.01.07





새해가 밝았으나 별 다른 감흥이 없다. 태생적으로 새해에 무딘 것은 아니다. 어렸을 때는 연도 날리고, 노래도 부르며 새해를 즐겁게 맞이 했던 것 같다. 그러나 이제는 새해라고 해봤자 출근을 한다거나, 시내를 누비며 그럴듯한 식사를 한다가나, 조금 특별한 커피를 마시는 것 정도.

계획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되고, 다짐해봤자 삼 일을 못간다는 걸 알게 되는 그런 알만한 건 이제 다 알게 된 나이. 그렇기 때문에 새(new)라는 어미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. 새해라고 해도 새롭지 않고 그저 이 추위에 어떻게 출근해야할지 걱정 반 짜증 반이 머리 속에 가득하다.

오히려 가끔 새롭다는 것이 부담이 될 때가 있다. 새로운 일을 맡는다거나 새로운 사람과 친해져야 하는 상황은 이제 재난에 가깝다. 그래서 새해 소망으로 "새롭게 생기는 것 없이 무탈하길"이라는 모순 적인 이야기를 꺼낸 적도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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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난 2 주간 토토가라는 20년 전 음악방송으재현이 큰 인기를 몰았다. 토토가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다큐로까지 나온다고 한다. 어느정도였냐면 방송을 보고 눈물바다가 되었다는 시청자들의 소감이 속속들이 올라왔을 뿐더러, 그 시간대의 시청률을 싸그리 가져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. 모르긴 몰라도 옛 방송들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.

새롭다는 건 환경이나 시간에 크게 구애받는 듯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. 오히려 그것들을 초월하는 감정으로 새해에도 새롭지 않을 수 있고, 20년 전과 마주하면서 새로울 수 있으니까.

대학생 시절 피천득의 새해라는 시를 읽은 적이 있다. 왜였는지, 박력이 없는 것 같고 비유도 상징도 없는 것 같아 실망했다. 그러나 최근 교보문고 대문에 걸려 있는 "새해에는 새로워라"을 보니 그 때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 든다.

'새해에는 새로워라/ 아침 같이 새로워라/ 너 마무들 가지를 펴며/ 하늘로 향하여 서다/ 봄비 꽃을 적시고/ 풍우를 이겨/ 또 하나의 연륜이 늘리라/ 하늘을 향한 나무들/ 뿌리는 땅 깊이 박고/ 새해에는 새로워라/ 아침같이 새로워라'

이제 와 내 처지를 보니 이 시는 새로움을 되찾으려는 노래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. 새해에도 새로움을 찾지 못하는 금아 선생님의 아쉬움 같은 것. 그래! 질곡 같은 생활에도 새해를
잿빛으로 보지 말고 올 한 해 새로움으로 가득 차길! 내 나무의 가지를 이제 그만 펴며 하늘로 향하여 서기를!